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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음악회 앙코르곡 사연

Posted 2018-01-12 08:07,   

Updated 2018-01-12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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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음악회 앙코르곡 사연

 1일 오전 11시 15분 베네치아 라 페니체 극장에서 열린 신년음악회. 1792년 개관한 ‘불사조’라는 뜻의 라 페니체 극장은 베르디의 오페라만 5개 작품이 초연된 오페라의 성지다. 올해 신년음악회는 동양인 최초로 정명훈 지휘자가 맡아 세계 음악계의 관심을 받았다. 이 공연은 이탈리아 국영방송(RAI)을 통해 생중계됐다.

 후반부 베르디와 푸치니의 오페라 하이라이트로 꾸며진 프로그램이 끝나고 앙코르로 이탈리아 애국가에 준하는 베르디 ‘나부코’에 나오는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이 연주됐다. 그리고 정명훈 지휘자는 “세계 노래의 중심 이탈리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와 가장 아름다운 극장에서 새해를 맞으니 정말 복 받은 사람들입니다. 가장 아름다운 음악으로 세계를 향해 새해 인사를 보냅니다”라며 신년인사를 건넸다. 이탈리아 대통령과 베네치아 시장이 참석한 객석에서 우레와 같은 박수가 쏟아졌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빈 필하모닉 신년음악회의 앙코르는 ‘라데츠키 행진곡’이다. 객석의 청중은 군인들처럼 박자에 맞춰 흥겹게 박수를 치는 곡으로도 유명하다. 국내에서도 7일 KBS에서 이탈리아 지휘자 리카르도 무티가 지휘한 2018 빈 필하모닉 신년음악회가 방송됐다. 여느 해와 같이 ‘라데츠키 행진곡’으로 끝났다. 그런데 왜 정명훈은 라 페니체 극장 신년음악회에서 라데츠키 행진곡 대신 나부코를 연주했을까?

 이유는 빈 필하모닉 신년음악회의 기원에 있다. 1939년 12월 31일 나치 독일 치하의 오스트리아 빈에서는 군인들을 위한 위로 공연이 열렸다. 빈 필하모닉이 주최한 일종의 합병 축하 콘서트였다. 단원의 반 이상이 나치당에 가입하고 유대인 연주자 6명이 강제수용소로 보내진 뒤였다. 나치 군인들에게 모차르트와 베토벤의 심각한 교향곡보다는 오락적이고 자극적인 빈 왈츠가 제격이었다. 프로그램은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왈츠로 채워졌다. 정치적인 목적의 이 이벤트는 매년 전 세계 90개국 4억 명 이상이 시청하는 빈 필하모닉 신년음악회의 시작이었다.

 18세기 후반에 태동한 왈츠는 남녀가 상반신을 밀착한 상태에서 회전하며 추는 윤무(輪舞)였다. 왈츠가 유럽 전역에 퍼진 것은 1814년부터 이듬해 6월까지 무려 9개월 동안 열린 빈 회의 때였다. 나폴레옹 전쟁의 처리를 위한 빈 회의는 유럽 주요 열강의 외교무대였다. 200개국의 대표와 수행원들로 빈은 붐볐고 치열한 로비는 밤마다 무도회로 이어졌다. 부작용도 많았다. 빈 회의 이후 빈에는 수많은 사생아가 태어났다. 베토벤은 불손한 왈츠를 ‘쓰레기통에나 들어가야 할 저속한 음악’이라며 비분강개했다.

 1870년 통일되기 전까지 베네치아를 비롯한 이탈리아 북부는 오스트리아의 식민지였다. 1848년 라데츠키 장군이 이끄는 오스트리아 제국군은 베르디도 적극 참여했던 이탈리아 독립운동을 무자비하게 진압했다. 롬바르디아 평원을 피로 물들인 라데츠키 장군이 빈으로 개선할 때 요한 슈트라우스 1세가 바쳤던 곡이 바로 ‘라데츠키 행진곡’이다.

 이 때문에 이탈리아 라 페니체 극장 신년음악회에서 라데츠키 행진곡은 ‘과거 적국’의 음악으로 금기시돼 왔다. 이탈리아인이 지휘한 빈 필하모닉 신년음악회 대신 라 페니체 극장 신년음악회를 생중계한 RAI에 불평을 늘어놓은 무티의 인터뷰는 현재 이탈리아에서 논쟁거리다. 우리는 어떨까. 정명훈이 지휘한 라 페니체 극장의 역사적인 신년음악회를 KBS는 녹화중계조차 하지 않았다. 몇 해 전 국내 대표 교향악단의 신년음악회 앙코르는 ‘라데츠키 행진곡’이었다. 외세 침략의 경험을 겪은 우리에게도 ‘라데츠키 행진곡’보다는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이 정서적으로 더 맞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