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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든 판’ 시대 가고 ‘옥스퍼드 판’ 시대가 열렸다

‘아든 판’ 시대 가고 ‘옥스퍼드 판’ 시대가 열렸다

Posted March. 06, 2017 07:09   

Updated March. 06, 2017 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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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연말에 ‘셰익스피어 전집’이 이상섭 번역으로 출간된 것은 지나칠 수 없는 문화적 사건이었다. 1960년대에 김재남 번역의 셰익스피어 전집 초판이 발간됐을 때 한국은 세계 여러 나라 중 그 책을 번역 출간한 일곱 번째 나라였다. 이후 몇몇 새 판본이 시도됐으나 이번에 간행된 이상섭 번역의 전집이야말로 새로운 국면을 열었다.

 오랫동안 정본 역할을 해오던 ‘아든 판’의 시대를 보내고 최신 연구 업적을 반영한 ‘옥스퍼드 판’의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무엇보다도 셰익스피어의 운문 원문과 우리말의 자연스러운 느낌을 최대한 살린 점이 돋보인다. 이로써 한국어판 셰익스피어 전집은 스보우치 쇼요의 일본어판 영향권에서 독립해 영어권 문화의 정수를 펼쳐놓았다.

 셰익스피어를 읽는 일의 중요성을 새삼 강조할 필요가 있을까. 미국 문학평론가 해럴드 블룸은 저서 ‘서양 고전’에서 셰익스피어의 작품이 유럽 문명 전체를 대표하는 고전의 중심이라고 확언했다. 블룸에 의하면 셰익스피어는 근대인을 발명했고 근대 영어를 발명했다. 셰익스피어의 극에 등장하는 많은 인물들은 과거에 없던 신인류로서 서구 근대인의 성격을 내장한 인물들이다.

 햄릿은 그 전에는 찾아보기 힘들었던 복합적 내면의 깊이를 가진 인물이다. 로미오와 줄리엣도 마찬가지다. 열네 살의 줄리엣이 “로미오가 나를 사랑한다면 아버지가 준 내 성을 갈겠다”고 한 말은 지금 읽어도 충격적이다. 서양의 근대 문화는 수많은 시인, 작가, 사상가들에 의해 성숙했다. 블룸은 이들이 그토록 높은 수준의 지적 결실을 거둔 것은 거장 셰익스피어와 경쟁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셰익스피어의 작품 중에 대중성이 높은 ‘로미오와 줄리엣’ ‘햄릿’ ‘맥베스’ 같은 몇몇 작품을 읽는 것은 인문 교양인으로선 필수다. 하지만 문화 전반의 성숙을 위해서는 그것으로 부족하다. 땅을 깊게 파려면 넓게 파야 한다. 어떤 대상의 전모를 놓침 없이 파악하려는 노력은 모든 대기만성의 사례가 공통적으로 가진 자질이다. 앞으로 완간될 최종철 번역본, 김정환 번역본 역시 셰익스피어의 작품이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자극해 한결 풍성하게 만드는 데 힘을 보탤 것으로 기대한다.

 이번 전집 간행을 가장 좋아할 사람이 누굴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은 한국학 분야의 이채로운 존재였던 민영규 선생님(1915∼2005)이다. 사학자이자 불교학자, 서지학자였던 그의 문장은 우아하고 품격 높기로 유명했다. 그는 “겨울방학마다 셰익스피어 전집을 완독하는 것이 인생의 큰 즐거움이다”라고 말하곤 했다. 민 선생님은 아든 판과 스보우치 판을 번갈아 보셨겠지만 이제 후학들은 한글판 독서의 호사를 누릴 수 있게 됐다. 방학마다 셰익스피어 전집을 읽는 후학들의 모임이 어딘가 생길 것 같다. 우리 인문학의 그릇은 그렇게 커지는 것이리라.

이영준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